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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사찰 분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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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 깊은 사찰 분황사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 주차장

경북 경주시 구황동 838-2

분황사 바로 앞에 무료로 운영 중이며 넓어서 주차하기 어렵지 않음

 

# 분황사

* 2023년 5월 4일부터 개정된 문화재보호법으로 무료개방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3년에 창건된 이래 지금까지 법등을 이어온 유서 깊은 사찰이다 분황사 창건 직후에는 자장율사와 원효대사가 주석하였다 고려시대 고종 25년 몽고침입과 조선왕조시대의 임진왜란·정유재란을 차례로 겪으면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버리고 광해군 원년에 중창하고 새로 주조한 보광전과 약사여래입상등이 사역을 지키고 있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신라의 석탑 중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모전석탑·원효대사의 비석을 세웠던 화쟁국사비부·신라 호국룡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석정 등의 석조 문화재가 남아있다

 

 

모전석탑

신라 선덕여왕 3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므로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이다 지금은 3층이지만 원래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5년에 일본인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수리했다 1915년 수리할 때 2층과 3층 사이에서 돌사리함이 발견되었다 함에는 녹유리 조각, 구슬, 가위, 금·은바늘과 은함 등이 담겨 있었다 이 동전으로 보아 고려 숙종에서 예종 때인 12세기 초에도 탑을 수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타이완, 오키나와 등지에 서식하는 조개의 껍질도 담겨 있었는데 당시 신라의 대외 교역에 대한 단서가 된다

 

 

화쟁국사비부

원효대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의 받침돌이다 고려 숙종 6년에 원효대사가 동방의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않음을 애석하게 여겨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석을 세웠다 그 후 절 근처에서 이 비석 받침을 발견하고 추사 김정희가 이를 고증한 글귀를 새겨 두었다 비석은 주변에서 찾은 비석 조각이 일부 전해지고 있다

 

 

석정

분황사에 남아 있는 신라 시대의 우물로 '나라를 지키는 용이 물고기로 변한 우물' 이라고 해서 호국용변어정으로도 불린다  [삼국유사]에 이 우물에 관한 이야기로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 동천사의 동지와 청지라는 우물에 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용이 살았는데 원성왕 11년에 당나라 사신이 주술을 써서 이 용들을 물고기로 둔갑시켜 잡아갔다 이 용들의 부인이라는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 남편을 찾아줄 것을 청하였고 왕은 사람을 시켜 물고기를 다시 빼앗아 각각의 우물에 놓아주자 물이 한 길이나 솟아오르고 용들이 기뻐하며 뛰었고 한다

 

 

틀의 높이가 약 70cm로 외부는 팔각 모양이고, 내부는 원형이다 남아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돌우물 가운데 가장 크고 우수하며 지금도 사용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보광전

*내부 촬영금지

1998년 보광전을 해체하던 중 발견한 기록에 의하면 보광전은 1680년 5월에 다시 지었고 불상은 1609년에 만들었다고 한다 분황사 보광전에는 약사여래입상이 모셔져 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조성된 불상 중에서 동으로 만들어진 것은 극히 드문 경우이며, 또 크기가 3.5m에 달하는 것으로는 분황사의 이 불상만 있다고 한다

 

 

# 황룡사지 계란꽃

분황사 입구 앞으로 황룡사지 간판따라 길을 가면 나오는 황룡사지로 원래는 청보리밭이었으나 지금은 들꽃들이 지천에 피어있다 흰색꽃은 계란꽃으로 알려진 개망초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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